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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하면서 ‘12.12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과 하나회가 재조명된다. 그런데 국군의 군사작전지휘권을 쥔 주한미군 사령관은 당시 뭘 하고 있었는지에 관심을 두는 이는 많지 않다.영화에서는 노재현 국방부 장관(배우 김의성)이 한미연합군사령부에 숨어 있다 돌아와서 전두환 하나회의 쿠데타를 지지한 것으로 아주 짧게 묘사돼 있다.군대를 동원하려면 군 최고 지휘권자의 명령 또는 승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렇다면 전방에 있던 1공수여단과 5공수여단 병력이 육군본부를 점령하는 동안 군사작전지휘권을 가진 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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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석 기자
2023.12.1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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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플러스는 지난 7월 정전협정 특판을 제작한 바 있다. 특판에 실렸던 원고를 다섯 차례에 나누어 연재한다.정전70년, 대한민국한국전쟁 제대로 보기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정전협정과 전쟁체제☞또다시 엄습해 오는 전쟁의 시간한국전쟁이 고마웠던 미국, 한국전쟁이 선물이었던 일본미국에 한국전쟁은 고마운 것이었다. 미국은 전 지구적 범위를 커버할 수 있는 군사력 확보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국방비 증액은 필수였다. 미 국무부는 1950년 4월 국방비 증액을 담은 NSC-68 보고서를 작성했다. NSC-68은 1949년 당시 130억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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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2023.10.02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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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플러스는 지난 7월 정전협정 특판을 제작한 바 있다. 특판에 실렸던 원고를 다섯 차례에 나누어 연재한다.정전70년, 대한민국한국전쟁 제대로 보기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정전협정과 전쟁체제또다시 엄습해 오는 전쟁의 시간정전 담판의 주역, 남일과 해리슨정전협정 마지막 장에 서명 주체가 명기되어 있고 그 하단에 “참석자” 남일과 해리슨이라는 이름과 사인이 등장한다. 남일과 해리슨은 1951년 7월부터 시작된 정전회담의 대표였다. 이들은 2년이 넘도록 765차례나 되는 긴 회담을 이어갔다.많은 이들은 전면전으로서의 한국전쟁을 미국과 중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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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2023.10.01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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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플러스는 지난 7월 정전협정 특판을 제작한 바 있다. 특판에 실렸던 원고를 다섯 차례에 나누어 연재한다.정전70년, 대한민국한국전쟁 제대로 보기☞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정전협정과 전쟁체제또다시 엄습해 오는 전쟁의 시간한국전쟁의 기원 : 미군정의 실시해방과 동시에 우리 민족은 자주독립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활동을 본격화했다. 여운형 선생을 중심으로 하여 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가 결성되었으며, 전국적 범위에서 인민위원회가 조직되었다. 건준의 목적은 아래와 같았다.첫째, 우리는 완전한 독립 국가의 건설을 기한다.둘째, 우리는 전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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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2023.09.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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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플러스는 지난 7월 정전협정 특판을 제작한 바 있다. 특판에 실렸던 원고를 다섯 차례에 나누어 연재한다.정전70년, 대한민국☞한국전쟁 제대로 보기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정전협정과 전쟁체제또다시 엄습해 오는 전쟁의 시간‘그 전쟁’을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한국전쟁처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전쟁도 없다. 혹자는 6.25 전쟁, 6.25 동란, 6.25 사변이라고 부른다. 전쟁, 동란, 사변이 갖는 의미는 각각 다르지만, 6.25라는 이름이 붙는 이유는 같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북한에서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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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2023.09.29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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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플러스는 지난 7월 정전협정 특판을 제작한 바 있다. 특판에 실렸던 원고를 다섯 차례에 나누어 연재한다.☞정전70년, 대한민국한국전쟁 제대로 보기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정전협정과 전쟁체제또다시 엄습해 오는 전쟁의 시간 2023년의 한반도, 흡사 6.25 전야북한 정권을 타도하자는 사람이 통일부 장관이 되었다. 보수 정권의 통일부 장관 중 제대로 된 대북정책을 추진한 경우는 물론 없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노골적으로’ 북 정권 타도를 외치는 사람이 통일부 장관이 된 적은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앉힌 김영호는 ‘북 정권 타도’를 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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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2023.09.2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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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교전을 중단한 지 70년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정전체제는 아직 평화체제로 전환되지 않았다.‘끝나지 않은 전쟁’ 상태에 놓인 한반도. 윤석열 정권은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추진하고, 대북 선제공격을 공공연하게 떠든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면 ‘반국가세력’으로 몰아붙인다.7.27정전 70주년을 맞아 정전협정문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본다. 최근 전쟁위기의 본질과 평화체제 모색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전쟁 당사자는 조선과 미국정전협정의 정식명칭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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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석 기자
2023.07.26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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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3.1절 발포사건이 제주4.3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억울한 죽음에 항의해 3.10총파업으로 맞선 이들을 왜 빨갱이로 몰아 학살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3.1발포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을 뿐인데, 미군정은 왜 제주를 ‘레드 아일랜드(빨갱이 섬)’로 규정하고 군경과 서북청년단을 동원해 폭압을 가했을까?반공주의 시범케이스반파시즘이 득세하던 해방정국에 미군정은 반공주의 설파를 위한 일종의 ‘시범케이스’가 필요했다.당시 유럽은 나치 척결이, 아시아는 일본 군국주의 척결이 시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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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석 기자
2023.04.0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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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했다. 그런데 그날의 해방은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연합군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덕택에 주어진 선물일까? 아니면 우리 민족의 힘으로 싸워 얻어낸 전취물일까? 전자를 ‘타력 해방론’, 후자를 ‘자력 해방론’이라 부른다.이남 사회는 타력 해방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만, 이북은 자력 해방론이 절대적인 상식이다.물론 자력 해방이라고 해도 우리 민족 자체의 힘만으로 일제를 물리쳤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2차 세계대전은 전 세계 파쇼국가와 연합군 사이의 ‘판갈이’ 전쟁이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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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석 기자
2022.08.1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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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의 탄생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8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을 보장받기 위해 파업 집회를 열었다. 당시는 하루 10시간, 주 7일 근무가 일반적이었다.그러나 미국은 시위대를 공산 폭도로 규정하고 경찰과 군대를 동원, 총기를 발포하며 유혈 진압했다.이 사건을 계기로 시위는 시카고에서 미국 전역으로 번져나갔고, 세계 노동자들이 함께 궐기하는 촉매가 되었다. 결국 자본가와 정부는 노동자의 단결투쟁에 무릎을 꿇고 8시간 노동을 보장할 수밖에 없었다.1889년에 제2인터내셔널이 5월 1일을 시카고 노동자 투쟁의 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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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석 기자
2022.05.0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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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수립 100일도 되지 않아 이승만 정권은 좌익세력을 처벌하겠다며 국가보안법을 제정·공포했다.(1948.12.01.)친일청산과 국가보안법당시 대한민국 정부가 해결할 최대 과제가 친일청산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제헌의회도 곧바로 친일파의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반민족행위처벌법(1948.09.22.)'을 제정해 친일청산에 나섰다.하지만, 친일청산보다 좌익처벌을 더 시급한 과제로 설정한 이승만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이듬해 6월 6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습격해 명단을 불태웠다. 곧이어 국회에서 반민법을 개정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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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석 기자
2021.12.0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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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직후 3일간 휘날린 태극기흔히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항복을 발표해 광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맥아더 ‘일반명령 제1호’(한반도 38도선, 베트남 16도선 분할)와 항복문서는 8월 11일 3부조정위원회 회의에서 확정되었다.이때부터 일본은 몽양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통치권 이양을 시작했고, 8월 15일 조선총독부 건물에는 의연히 태극기가 휘날렸다.그러나, 맥아더 사령관이 보낸 미군 선발대는 “미군이 진주할 때까지 모든 체제를 변경하지 말고 계속 유지하다가 정식 항복할 때 일본 통치기구를 그대로 미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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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석 기자
2021.08.15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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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의 쌍방인 북한(조선)과 미국, 과연 어느 쪽이 승전국인가?전쟁의 참상을 두고 승패를 따진다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지만, 굳이 따진다면 북한(조선)은 승전국이고 미국은 승리하지 못한 최초의 전쟁이다.승패의 구분이 애매한 이유는 지금까지 종전을 선언하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미국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쟁에서조차 미국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만큼 최강국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들이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북한(조선)은 1953년 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일로 정하고 전승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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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석 기자
2021.07.2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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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을 짓밟은 5.16쿠데타가 발생한 지 어언 60년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아직 쿠데타의 악령은 사라지지 않았다.쿠데타의 뿌리가 뽑히지 않은 이유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한 데다, 쿠데타 음모 세력이 아직 막강한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다.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다?쿠데타란 지배계급 내의 일부 세력이 무력 등의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기습적인 정치활동을 말한다. 혁명과는 달리 민중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쿠데타(coup d'état)라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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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석 기자
2021.05.1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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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3.1절 기념식이 끝난 후 제주 관덕정에서 가두시위를 구경하던 어린이가 기마경찰이 탄 말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기마경찰이 아랑곳하지 않고 현장을 그대로 빠져나가려 하자 군중들이 항의했고 경찰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면서 6명이 숨졌다.“해방된 우리 땅에서 경찰 총에 맞아 죽다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데, 얼마나 많은 죽을 고비를 넘고 또 넘었는데”라는 절규가 쏟아졌다.3.1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지만 일제 경찰 출신이 82%인 당시 제주도 경찰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이에 3월 10일 유례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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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석 기자
2021.04.0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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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된 땅에 외세가 또 우리를 통치한다는데 누가 찬성(찬탁)하겠는가? 그래서 ‘신탁통치’란 말을 처음 들으면 누구나 반대(반탁)하게 된다.그러나 1945년 해방 직후에는 ‘신탁통치’를 둘러싸고 의외로 찬반 논쟁이 격렬했다.38선 이남의 여운형, 김규식, 김원봉 그리고 송진우 등은 찬탁, 이승만, 김성수 등은 반탁 대열에 섰다. 반탁에 앞장섰던 김구는 ‘송진우 암살 사건’ 이후 미군정을 반대하진 않는다며 한발 물러섰다. 38선 이북은 대부분 찬탁이었다.간단해 보이는 문제가 이처럼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된 이유를 알아보자.이승만이 찬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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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석 기자
2020.08.1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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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드는 몇가지 의문 광복 7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많다. 반복된 강요로 굳어지고 엉켜버린 진실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몇 가지 질문에 답해 본다. [편집자](1) 일본은 왜 8월15일에 항복했나?(2) 38°선을 왜 한반도에 그었나?(3) 나라면 ‘찬탁’일까, ‘반탁’일까?2차 세계대전 전범국 독일은 패전과 동시에 동·서독으로 강제 분할되었다. 그러나 같은 전범국 일본은 그대로 두고 식민지배를 당한 베트남(16°선)과 한반도(38°선)를 반으로 갈랐다.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 상황을 당사자인 우리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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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석 기자
2020.08.14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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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드는 3가지 의문광복 75년,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많다. 반복된 강요로 굳어져버린 사색의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 3가지 질문에 답해 본다. [편집자](1) 일본은 왜 8월15일에 항복했나?(2) 38°선을 왜 한반도에 그었나?(3) 나라면 ‘찬탁’일까, ‘반탁’일까?1945년 8월 15일 정오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라디오 방송으로 항복을 선언했다. 이날을 우리는 광복절로 기념한다.일제가 항복한 이유는 8월 6일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제는 원폭 투하 전인 7월 11일 미국에, 7월
다시 쓰는 현대사
강호석 기자
2020.08.1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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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한국전쟁사6·25전쟁 발발 70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 전쟁을 누가 도발했는지, 왜 도발했는지에 대한 주장은 평행선이다. 전쟁 당사국인 북·미 쌍방의 주장을 모두 참고하여 ‘다시 쓰는 한국전쟁사’를 연재한다. [편집자](1) 6‧25전쟁은 과연 6월 25일에 터진 남침일까?(2) ‘조국해방’전쟁인가? ‘자유수호’전쟁인가?(3) ‘개전 3일만에 서울 함락’이 남침 증거라고?(4) 맥아더, ‘전쟁의 신’인가? ‘전쟁광’인가?(5) 미군사령관은 왜 4번이나 교체됐을까?(6) 일본의 한국전 파병과 전후 고도성장의 비밀(7) 67일
다시 쓰는 현대사
강호석 기자
2020.08.0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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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당시 한반도를 무차별 폭격한 미국 전투기와 함대들은 일본에 기지를 두고 출동했으며, 미국의 주요 전쟁물자와 전투자재 또한 일본 병참기지에서 공급된 사실은 이제 비밀이 아니다.최근 알려진 데 따르면 일본 군대와 함선들이 직접 한국전쟁에 참가했으며, 참전을 대가로 한반도를 다시 일본의 식민지로 넘겨 달라고 미국에 요구했다.맥아더가 한국전쟁을 결심한 1950년 2월 이승만을 도쿄로 불러 ‘전쟁 개시 11개조 훈령’을 전달할 때, 미국의 한반도 전쟁계획 ‘R-3’ 수립에 참여한 핫토리 대좌를 비롯한 일본 고위 정객들이 맥아더 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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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석 기자
2020.07.31 19:07